[병원의 중심에서 창업을 외치다. 2] 파프리카랩

파프리카는 강렬한 3원색을 갖는 열매 채소다. 출처: pixabay
파프리카는 강렬한 3원색을 갖는 열매 채소다. 출처: pixabay

파프리카랩(Paprica Lab)은 파프리카를 연구하지 않는다. 강렬한 색깔을 띤 원색 열매가 아니라 방사선 치료에 필요한 보조기구와 재료와 측정기기를 개발한다.

파프리카랩의 김정인 대표(서울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Apple)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어 회사 명칭을 열매로 지었다.

왜 파프리카를 골랐을까? 파프리카는 색이 3가지(빨강, 노랑, 초록)다. 김대표는 파프리카가 강렬한 3원색에 우람한 근육처럼 생겨, 환자에게 힘차고 건강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열매 파프리카는 영어로 'Paprika'지만, 회사 파프리카랩은 'Paprica'로 쓴다. 'Personalized Adaptive Precise Radiotherapy Innovative and Comprehensive Assistant Lab'(적용하기 쉽고 정밀한 맞춤형 방사선 치료와 혁신적이고 포괄적인 보조 실험실)이다.

파프리카랩의 김정인 대표와 우홍균 대표, 박종민 대표(왼쪽부터).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홈페이지
파프리카랩의 김정인 대표와 우홍균 대표, 박종민 대표(왼쪽부터).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홈페이지

왜 파프리카랩을 세웠을까? 김교수는 환자가 방사선을 가장 적게 받을 수 있도록 방사선량(이하 선량)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의학물리학자다.

김교수는 서울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에서 우홍균 교수, 박종민 교수와 함께 2016년부터 '3차원 환자맞춤형 생체 방사선량 계측시스템 개발 및 적용'을 주제로 국립암센터의 '암 정복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세 교수는 선량을 직접 측정하는 부위는 눈, 특히 수정체라 생각했다. 수정체는 방사선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에 환자가 받은 선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것.  세 교수는 환자의 선량과 백내장 여부를 예측하기 위해, 콘택트렌즈 형태로 환자의 눈에 씌우고 선량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생각했다.

암 정복 연구과제의 목표는 연구결과를 사업에 적용하거나 제품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당초 김교수는 고안한 방사선 치료 기술을 다른 기업에 이전해 제품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그 앞은 가시밭길이었다. 김교수는 방사선 치료에 필요한 기구를 만드는 업체가 국내에 없으며, 있어도 해외에서 수입한 기구를 보완하는 정도라는 것을 깨닫고, 치료기기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김정인 대표와 우홍균 대표의 인연은 제자와 스승으로 시작됐다(왼쪽부터).
김정인 대표와 우홍균 대표의 인연은 제자와 스승으로 시작됐다(왼쪽부터).

연구과제가 창업으로 이어지면서 우교수와 박교수도 창업에 가담했다. 우교수는 김교수의 지도교수로, 김교수 결혼식에서 주례도 섰다. 박교수는 환자의 종양에만 방사선을 쪼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유도 방사선치료를 연구하는 의학물리학자다.

파프리카랩 대표 3명은 파프리카 3원색처럼 강렬하다. 김교수는 열정적인 빨간색이다. 경영을 기획하고 제품을 만들어, 파프리카랩을 이끈다. 우교수는 포근한 노란색이다. 마케팅으로 파프리카랩이 성공한 미래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박교수는 안정적인 초록색이다. 한 자리에서 R&D에 집중한다.

세 명 모두 창업을 함께하는 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이인지라, 창업에도 저절로 의기 투합한 것. 세 대표는 오래도록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2019년 방사선 치료에 필요한 보조기구와 재료, 측정기기를 개발하는 의사창업기업 '파프리카랩'을 설립했다.

파프리카랩은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개최한 바이오 코리아 2021에서 안구선량계 CLOD를 대표로 내밀었다. 출처: 파프리카랩
파프리카랩은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개최한 바이오 코리아 2021에서 안구선량계 CLOD를 대표로 내밀었다. 출처: 파프리카랩

파프리카랩은 제일 먼저 콘택트렌즈형 안구선량계 'CLOD'를 개발했다. 렌즈처럼 생긴 장치를 환자 눈에 씌워 방사선량(이하 선량)을 측정하겠다는 것. CLOD는 임상시험과 특허까지 통과하고, 작년에 처음으로 세브란스병원에 납품됐다.

오래 쌓은 경력과 경험 덕분에 연구와 개발은 순조로웠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경영이 처음이다 보니,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찾기 힘든 것. 김교수는 "의료기기 출품을 허가받는 인허가 절차가 특히 어려웠다"고 털어놓는다.

파프리카랩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도하는 초기창업패키지에 선정돼 창업을 돕는 프로그램을 지원받았다. 초기창업패키지는 창업 3년 이하 초기창업기업에 자금과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보건산업진흥원은 파프리카랩에 연구비를 지원해, 여러 의사창업기업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연구를 함께할 장을 마련했다. 의료기기 인허가 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의사창업기업이 파프리카랩 말고도 꽤 있던 것.

이를 계기로 파프리카랩은 의료기기를 만드는 의사창업기업이 의료기기 인허가 변화에 따른 최신 지견을 습득할 수 있는 '의료기기 인허가 연구회'를 설립했다.

제품 포장 같은 디자인도 난관이었다. 의학계에서는 디자인을 학회 발표 자료를 만들 때만 쓰기 때문. 박교수는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포장 박스와 장비 디자인을 해결했다.

제품은 아직 논문과 입소문으로만 홍보하는 상황. 김교수는 "의사와 물리학자로 겸직을 하는데다, 인력도 많이 없어 홍보와 영업에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우교수는 "회사가 안정되면 홍보와 디자인 담당 사원을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프리카랩은 한국방사선종양학회가 추계 학술대회를 오프라인으로 개최할 때, 부스를 두고 제품을 적극 홍보할 예정이다. 홍보가 잘 되면 내년에는 미국 학회에서도 부스를 운영하겠다는 것.

김정인 대표는 "방사선 치료를 두려워하는 환자가 많다"며 "환자에게 맞춤형 의료기기를 개발해서, 무서운 방사선치료가 아닌, 완치를 목표로 삶의 생기를 주고 원동력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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