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중심에서 창업을 외치다. 1] 라이조테크
의사가 청진기만 들던 시절은 끝났다.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는 의사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그 중 하나가 창업이다.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치료제와 의료기기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은 연구역량이 뛰어난 병원을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연구중심병원은 병원의 임상지식을 바탕으로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로 의료서비스와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병원이다.
보건산업 분야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8년 보건산업혁신창업센터도 세웠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 6월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코리아 2021(BIO KOREA 2021)에서 의사창업기업 12개를 소개했다.
환자를 보기에도 바쁜 의사들이 왜 창업이라는 도전장을 내밀었을까? 의사가 창업한 기업 12개가 '병원에서 창업을 외친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자.

1형, 2형 당뇨병 환자는 대부분 인슐린 치료를 받는다. 인슐린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이명식 교수(내분비내과)는 인슐린이 아닌 자가포식과 라이소좀으로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본 도쿄공업대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1992년 발견한 자가포식 메커니즘이 당뇨병 치료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 파악한 것.

이 교수는 2008년 자가포식 작용이 부족하면,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가포식을 늘리면 당뇨병이나 대사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다는 논문을 2018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자가포식(Autophagy)이란 세포가 스트레스에서 살아남으려고 구성요소를 스스로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이다. 라이소좀(Lysosome)은 자가포식 과정에서 남은 찌꺼기를 제거한다. 자가포식이 세포를 청소하는 쓰레기통이라면, 라이소좀은 그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인 셈.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져 발생하는 제2형 당뇨병은 대부분 인슐린 저항을 낮추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하지만 인슐린 저항성 감소제는 당뇨 환자 중 1/3만 효과를 본다.
이 교수는 대사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물질이 인슐린이 아니라면, 자가포식과 라이소좀으로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면 NASH(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이나 치매도 치료할 수 있겠다. 이 교수는 원형 화합물만 개발하면 나머지는 제약업체에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제약업체가 이런 분야를 전혀 몰라 치료제를 개발할 수 없다는 것. 고민 끝에 이 교수는 치료제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고, 2019년 라이조테크(LysoTech)를 세웠다.
창업을 해도 치료제 개발은 첩첩산중이었다. 연구할 수 있는 공간부터 부족했다. 약대나 자연계 쪽은 창업을 하면 교수 실험실 같은 연구 공간이 넉넉하지만, 의대와 병원 특히 대학병원은 그럴 공간이 너무 모자랐다.
의사의 연구와 창업을 돕는 연구중심병원도 사정이 복잡했다. 창업을 하려는 의대 교수는 수백 명이나 되지만, 환자를 받기에도 바쁜 병원에 연구나 창업은 배부른 소리였다.
이 교수는 근무하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신촌역 부근에서 사무실을 마련했다.

연구 과정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가포식 메커니즘은 오스미 교수가 맥주효모(Saccharomyces cervisiae)로 연구했기 때문에, 사람에게 바로 적용할 수 없던 것.
효모와 사람의 자가포식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스미 교수와 함께 자가포식을 15년 동안 연구한 표종옥 박사를 주임연구원으로 데려왔다.
약품 개발도 쉽지 않았다. 연구개발은 쥐나 토끼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해 효과가 있으면 그만이지만, 약품 개발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작은 부작용도 없어야 한다. 약품 개발은 연구보다 거쳐야할 단계가 훨씬 많고 까다롭다.
자가포식으로 나올 수 있는 가장 부담스러운 부작용은 암이다. 지나친 자가포식은 암세포가 생기고 성장하는 것을 촉진한다. 라이조테크가 개발하는 당뇨병 치료제는 암이 발생할 정도까지 자가포식을 자극하지 않아 암이 발생할 우려는 매우 적다.
제형(약물의 형태)을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치료제 하나를 만들려면 먼저 주사나 알약 같은 약물전달경로를 고민해야 한다. 알약이라면 크기와 두께, 모양과 재질을 어떻게 할 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가 약을 쉽게 삼키고, 먹은 약은 제 시간에 녹아 점막에 흡수되고 혈관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
이 교수는 "국내 약학 분야에서도 제형을 전공한 사람이 드문데, 우리처럼 의학 연구에 집중한 사람에게는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라이조테크는 당뇨병 치료제 전임상을 내년에, 임상 1상은 2023년에 진행한다. 치료제는 언제 나올까? 2026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4~5년 동안 연구비를 어디서 구해야 할까?
라이조테크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이 주도하는 초기창업패키지 대상에 선정돼 1억2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초기창업패키지는 창업 3년 이하 초기창업기업에 자금과 함께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많은 투자자를 만나 투자도 받았다. 표박사는 "투자자가 지원을 잘해준 덕분에 여유롭게 시작하고 있어, 당분간 매출 걱정 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명식 대표는 돈은 좀 못 벌어도 치료제는 꼭 완성하겠다는 열정을 갖고 있다. "자가포식 및 라이소좀 증진제를 만들어 당뇨병은 물론 NASH나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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