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협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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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古朝鮮)이다. 모든 한국사 교과서에도 그리 기술돼 있다. (이 장면에서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한 정치(精緻)한 개념을 바탕으로, 소위 '고조선 때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민족은 근대 이후 성립된 개념이다' 등에 대해 논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반도에 최초로 성립한 '국가'가 소위 '고조선'이냐 아니냐, 그리고 그 이후 성립된 국가들이 소위 '고조선'의 후예임을 자처했느냐 아니냐를 따지고자 할 뿐이다. 그 점에서 필자는 '한반도에 최초로 성립한 국가는 소위 고조선이 맞으며, 이후 국가들도 자신들이 소위 고조선의 후예였음을 인정했다'고 확신한다. 숱한 역사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데, 필자는 고조선 앞에 왜 '소위'(所謂)이라는 단어를 덧붙였을까? 잘 아시듯, '소위'라는 낱말의 뜻은 '세상에서 말하는 바'라는 뜻이다.

그렇다. 한반도에 '고조선'이라고 불린 ‘실존 국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때문에 '고조선'이라는 표현을 인정할 수 없다. 엥? 이게 뭔 개소리?

신라와 고구려, 조선의 후예 자처

중국 한(漢) 왕조의 침략으로 서기전 108년에 몰락한 나라는 '고조선'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 측 그 어느 사서에도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없다. '조선'이었다.

우리가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의 나라를 조선이라고 불렀다. 조선이 망하자, 그 후예들은 망국민으로서 자신들이 살던 땅에 남기도 했고,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들 중 훗날 고구려나 신라에 속하게 된 이들은 자신들을 ‘조선의 후예’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도대체 '고조선'이라는 표현은 언제 등장한 것일까?

 『신라인은 삼국통일을 말하지 않았다』라는 책(학고재 간. 2017년)을 쓰기 위해 필자는 신라와 고구려, 그리고 백제인들이 남긴 모든 기록을 전수조사했다. 그 어디에도 ‘고조선’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고조선'이라는 명칭이 탄생한 것은 조선이 몰락하고 근(近) 1400년 뒤, 일연 스님(1206 ~ 1289)이 『삼국유사』를 집필하면서였다.

일연 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 출처: Wikipedia
일연 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 출처: Wikipedia

일연 스님, 위만 조선과 구분위해 '고조선' 造語
민족의식 고취 위함이었던 듯

일연 스님은 서기전 194년, 연나라 망명객 위만이 요즘 말로 치면 쿠데타를 통해 조선의 왕권을 탈취하자 이를 '위만 조선'이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위만 조선' 이전의 조선을 옛 조선, 즉 '고조선'이라고 불렀다.

일연 스님은 왜 조선을 굳이 이리 나누고 싶어했을까? 스님의 저작 어디에도 이에 대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몽골 강점기에 소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삼국유사』를 쓰셨던 스님이셨기에, 외세에 의해 조선의 지배 구조가 바뀐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구분을 하지 않으셨나 싶다.

여하튼 이것이 '고조선'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배경이다. 즉, 고조선이라는 표현에는 애초 ‘위만 조선’조차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뒤 1392년 이성계의 '조선'이 개국하면서, 우리 최초의 국가였던 조선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고조선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원래 있던 이름을 후대의 편의를 위해 바꾸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법적으로도 그렇고, 하다못해 '상도의'(商道義)로 봐도 '상호'를 먼저 쓴 사람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본다.

'조선'보다는 '후 조선', '이씨 조선'으로 바꾸는 게 합리적

우리 최초의 국가였던 조선과, 이성계가 개국한 조선이 정 헷갈린다면, 이성계가 개국한 조선을 '후(後) 조선' 혹은 '이씨 조선' 등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우리 역사에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조선'이 있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필자는 그 어떤 글에서도 '고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필자 소개

서울 출생. 서울대 동양사 전공(서양사 부전공). 고려대 세종캠퍼스 고고학 전공(석사). 언론을 통한 사회 개혁을 꿈꾸며 1990년 조선일보사 입사. 주로 문화재 담당기자를 하며 조선일보 역대 특종 건수 10위에 듦. 2004년 서울시청 출입기자 시절, 이춘식 당시 부시장에게 "서울광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도심에서 들어보자"고 권유. 그해 12월 24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개장되자 특종 기사를 쓸 때보다 더 기뻤음. 이를 계기로 '글'이 아니라 '정책'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관심을 갖게 됨.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 행정관(2009년), 대한의사협회 제40대 집행부 홍보·공보이사(2018년) 역임.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선대의 고향인 인천 검단에서 농사를 지으며 독서와 집필 활동 중, 저서로는 한국사에 대한 지나친 미화를 비판한 『한국 고대사에 대한 반역』(2004년 조선일보사 간). 신라인들이 남긴 모든 기록을 전수조사한 뒤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삼국통일이 아니라 삼한통일을 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한 『신라인은 삼국통일을 말하지 않았다』(2017년 학고재 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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