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하나'를 요구하는 것은 획일주의 혹은 중앙통제식 사고의 산물일 수도

[사진=의협신문 제공]
[사진=의협신문 제공]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봄 바람이 몰고 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대요."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필자의 문장 중 우리말 표기법상 틀린 부분이 있다. 뭘까?

우선, 미류나무는 미루나무로, '봄 바람'은 '봄바람'으로 붙여 써야 한다. 

미루나무는 40년 전만 해도 미류(美柳)나무라는 표기가 맞았다. 버드나무(柳)의 한 종류이니까... 

한데 많은 이들이 '미류'를 '미루'로 발음한다는 이유로, 미루나무를 옳은 표기로 바꿨다. 어문 규정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에서. 삭월세(朔月貰)를 사글세로 바꾼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봄바람'은 '명확히 한 단어로써 쓰이니', 봄과 바람을 띄어 쓰면 안 된단다. 국립국어원 규정에 따르면.

하긴 말이나 글이라는 게 언중(言衆)의 언어 사용 문화를 궁극적으로는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일단은 받아들이자. '바랄'보다 '바다'를 언중 다수가 사용하면 바다로 쓰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언중의 언어 사용 방식' 중 어느 단어가, 혹은 어느 표현이 다수인지 소수인지 과연 정확히 따져보고 정한 것일까?

예를 들어, 짜장면과 자장면은 지금은 복수 표준어이다. 하지만 2011년 8월 30일까지는 '자장면'만이 표준어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요즘처럼,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짜장면'이라고 쓰고 발음했다. 그럼에도 자장면은 복수 표준어로 살아남았다. 왜 삭월세는 죽고, 자장면은 살아 남았을까? 도대체 기준이 뭐였을까?

띄어쓰기 규정도 마찬가지다. 질문 하나. 띄어쓰기가 맞나, 띄어 쓰기가 맞나? 전자가 맞다. 띄어쓰기는 명확히 한 단어로 보니, 띄어쓰기라고 적어야 한다. 그럼 '띄어쓰다'가 맞나, '띄어 쓰다'가 맞나? 띄어쓰기라고 적었으니 띄어쓰다라고 해야 하나? 땡! '띄어 쓰다'로 적어야 한다. 이 경우는, '띄다'와 '쓰다'라는 동사를 '단순히 합친 표현'이기 때문에 '띄어 쓰다'라고 해야 한단다. 

출처: pixabay
출처: pixabay

'님'도 복잡하기만 하다. 의존명사로,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니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 '홍길동 님'이라고 적어야지, '홍길동님'이라고 하면 틀리다.  

그래서, 사장이나 과장을 높여 부를 때 '사장 님' '과장 님'이라고 적어야 한다. 그럼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도 '사모 님'이라고 적어야 할 것이다. 땡! 이 경우는 '사모님'이다. '사모님'은 한 단어로 보는 것입니다. 그럼 '사장님'은 왜 한 단어로 안 보나? 요즘은 잘 모르는 사람이면 대뜸 '사장님'이라고 '한 단어'로 부르는데! 왜 '사장님'은 안 되고, '사모님'은 되나?

'지난여름' '지난해'는 되도, '지난시간'은 안 된다. '지난 시간'이지 '지난시간'은 틀리다.   

이쯤 되면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푸념이 나올 만하지 않나?

20년 간 기자를 한 탓인지,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가능하면 지키려고 여전히 노력한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을 보면 답답한 경우가 정말로 많다. 음모론적 발상인지 모르지만, 그런 어문규정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것으로 국립국어원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한다

말과 글이 100% 명확히 통한다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이제 '어느 정도는 놓아주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맞춤법에서는 복수 표준어를 늘리고, 띄어쓰기 역시 문맥이 명확히 통한다면 어문규정이랍시고 틀렸다, 맞다라고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통일된 하나'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획일주의 혹은 중앙통제적 사고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여전히 '미류나무 꼭대기에'로 노래를 시작하지, '미루나무 꼭대기에'로 노래하지 않는다. 사장님은 틀리고, 사모님이 맞는 이유도 여전히 모른다. 지난해나 지난여름은 맞고, '지난시간'이 틀린 이유도 그렇고.


필자 소개

서울 출생. 서울대 동양사 전공(서양사 부전공). 고려대 세종캠퍼스 고고학 전공(석사). 언론을 통한 사회 개혁을 꿈꾸며 1990년 조선일보사 입사. 주로 문화재 담당기자를 하며 조선일보 역대 특종 건수 10위에 듦. 2004년 서울시청 출입기자 시절, 이춘식 당시 부시장에게 "서울광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도심에서 들어보자"고 권유. 그해 12월 24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개장되자 특종 기사를 쓸 때보다 더 기뻤음. 이를 계기로 '글'이 아니라 '정책'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관심을 갖게 됨.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 행정관(2009년), 대한의사협회 제40대 집행부 홍보·공보이사(2018년) 역임.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선대의 고향인 인천 검단에서 농사를 지으며 독서와 집필 활동 중, 저서로는 한국사에 대한 지나친 미화를 비판한 『한국 고대사에 대한 반역』(2004년 조선일보사 간). 신라인들이 남긴 모든 기록을 전수조사한 뒤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삼국통일이 아니라 삼한통일을 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한 『신라인은 삼국통일을 말하지 않았다』(2017년 학고재 간) 등이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메드업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