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경시하는 듯한 문화재청 잇따른 행보 유감

[사진=의협신문 제공]
[사진=의협신문 제공]

문화유산을 경시하는 듯한 문화재청의 잇따른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의 절터 초석 걸터 앉음' 때 '초석은 문화재가 아니니 걸터 앉아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발표했던 문화재청이, 4월 28일에는 1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바둑알 추정 유물로 바둑을 두는 모습을 버젓이 바둑전문방송 등에서 공개한 것이다. 문화재전문가들은 "귀중한 유물을 문화재 보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다루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느냐"며 한탄했다.

신라 유물을 비전문가들이 마구 다룰 수 있게 한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4월 25일, '경주 쪽샘지구에 있는 1500년 전 신라 귀족 무덤에서 발굴된 바둑알 모양의 자갈돌이 진짜 바둑돌인지 알아보기 위해 4월 28일, 이 자갈돌을 이용해서 실제로 바둑을 둘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4월 28일, 바둑TV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 등을 통해 대국을 공개했다. 대국은 자갈돌이 출토된 신라 무덤에서, 유명한 아마추어 바둑인 두 명이 두었다. 

이 자갈돌은 학계에서 바둑돌이라고 그간 추정했다. 문화재청은 실제 바둑을 두어보는 '실험'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려보겠다고 한 셈이다. 

유물의 실제 용도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연구를 '실험 고고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석기시대의 돌칼이 발굴됐을 때, 이 돌칼의 파괴력이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동일한 재질로 같은 모양의 돌칼을 만들어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이 그런 경우다.

쪽샘44호분 출토 바둑돌(흑돌과 백돌). 출처: 문화재청
쪽샘44호분 출토 바둑돌(흑돌과 백돌). 출처: 문화재청

하지만 '실험 고고학'에서 '출토된 유물'을 직접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출토된 유물과 최대한 동일하게 만든 뒤 그것으로 실험을 한다. 설령 출토된 유물을 이용한다고 해도, '유물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문가의 손'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문화유산을 단 한 번도 다뤄보지 않은 비전문가들의 손에 유물을 맡겼다.

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이 지점에서 탄식한다.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바둑인들이 조심스레 바둑돌을 다룬 것은 맞다. (대국이 유리하게 흘러갈 때) 손바람을 내며 "딱딱" 소리가 바둑알을 판에 놓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비전문가들이 1500년 된 유물을 이토록 쉽게 만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문화유산 전문가 A씨(고고학 전공)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 최순우 선생이나 황수영 박사 등 숱한 박물관 전문가들은 '덜렁대는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유물을 만지지도 못 하게 했다"며 "문화유산은 시간 속에서 '약화'됐기 때문에, 최고 전문가들이 극도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B씨(미술사 전공)는 "세상 그 어느 나라도 1500년 이상 된 유물을 비전문가가 마구 만지게 하는 경우는 없다"며 "문화재청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문화유산 정책 수립과 관련한 최고 전문가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에 의견 청취라도 제대로 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968년 무장공비 침투 사건(1·21 사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던 북악산 길이 지난해부터 개방됐다. 출처: Wikipedia
1968년 무장공비 침투 사건(1·21 사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던 북악산 길이 지난해부터 개방됐다. 출처: Wikipedia

문 대통령 걸터 앉은 법흥사터 초석
"문화재 가치없다" 변호에만 급급

문화유산을 '경시'하는 듯한 문화재청의 이런 태도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법흥사 초석 사건' 때 문화재청의 대응이 그런 예였다는 것.

지난 4월 5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북편 개방 행사 때 법흥사터를 찾았다. 대통령은 이때 법흥사를 다시 짓기 위해 마련한 초석에 걸터앉았다. 신라 진평왕 때 최초로 세운 것으로 알려진 법흥사는 1968년 1.21사태(김신조 사태) 이후 폐쇄된 절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녹은 절이다. 초석 역시 1960년대에 사찰 중건을 위해 마련했다가 방치된 것으로 불교계는 추정한다. 때문에 초석은 법흥사 중건의 역사는 물론, 남북 분단과 대립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귀중한 근현대문화재인 셈이다. 그것을 대통령이 깔고 앉은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되자, 문화재청은 "법흥사터 초석은 문화재로 가치가 없다"며 대통령을 변호하기에만 바빴다. 

문화유산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산책 중 보호시설조차 마련되지 않은 절터 초석 위에 앉을 수는 있다"면서도 "우리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문화재청에서 근현대사의 아픔이 녹은 문화유산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문화재전문가들은 4월 들어 잇따라 터진 두 건의 사건은 우리 문화유산을 대하는 문화재청의 경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탄했다.


필자 소개

서울 출생. 서울대 동양사 전공(서양사 부전공). 고려대 세종캠퍼스 고고학 전공(석사). 언론을 통한 사회 개혁을 꿈꾸며 1990년 조선일보사 입사. 주로 문화재 담당기자를 하며 조선일보 역대 특종 건수 10위에 듦. 2004년 서울시청 출입기자 시절, 이춘식 당시 부시장에게 "서울광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도심에서 들어보자"고 권유. 그해 12월 24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개장되자 특종 기사를 쓸 때보다 더 기뻤음. 이를 계기로 '글'이 아니라 '정책'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관심을 갖게 됨.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 행정관(2009년), 대한의사협회 제40대 집행부 홍보·공보이사(2018년) 역임.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선대의 고향인 인천 검단에서 농사를 지으며 독서와 집필 활동 중, 저서로는 한국사에 대한 지나친 미화를 비판한 『한국 고대사에 대한 반역』(2004년 조선일보사 간). 신라인들이 남긴 모든 기록을 전수조사한 뒤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삼국통일이 아니라 삼한통일을 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한 『신라인은 삼국통일을 말하지 않았다』(2017년 학고재 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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