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중심에서 창업을 외치다. 6] 에이치제이엠에프

대한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 산학연병 파트너링 전시 부스에서 에이치제이엠에프 한정현 대표는 거즈 카운터를 선보였다.
대한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 산학연병 파트너링 전시 부스에서 에이치제이엠에프 한정현 대표는 거즈 카운터를 선보였다.

수술을 받고 퇴원한 환자의 몸에서 가끔 피묻은 거즈나 수술용 가위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본다. 

예를 들어 지난해 제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로 출산한 산모가 구토와 설사를 반복했다. 근처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산모의 뱃속에 15cm 크기의 거즈가 나왔다. 산부인과 의료진이 지혈에 사용한 거즈가 뱃속에 남아 직장과 소장을 압박한 것.

2019년에는 맹장수술을 받은 한 남성이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려 응급실에 입원했는데 소장에서 35cm나 되는 거즈가 나왔다. 두 사건 모두 의료진이 '거즈 카운트'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거즈 카운트는 수술에 사용할 거즈 개수를 미리 정한 뒤, 사용한 거즈가 환자 몸속에 남지 않도록 정확하게 세는 일이다.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은 수술을 마치면 거즈 개수가 그대로 남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거즈가 환자 몸속에 남아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수술에 사용한 거즈를 모두 찾지 못하면 의료진은 수술을 마무리할 수 없다. 수술이 끝난 뒤 하기로 계획한 회의도 사라진 거즈를 샅샅이 찾느라 시간이 1~2시간 지체되기도 했다.

인공심장이나 인공혈관 같이 흉부외과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기업 '(주)한진메디칼'의 한정현 과장은 의료기기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여러 병원에서 의사들을 만나면서 거즈 카운트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

한과장은 2019년 인공심장 임플란트 기술을 익히기 위해 일본의 한 대학병원에 출장을 갔다. 수술 현장을 보는 도중, 신기한 광경을 마주했다.

일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사용하는 거즈 카운터와 국내 간호사가 거즈 카운트를 하는 현장. 출처: 에이치제이엠에프
일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사용하는 거즈 카운터와 국내 간호사가 거즈 카운트를 하는 현장. 출처: 에이치제이엠에프

수술 환경을 관리하는 순회간호사가 어떤 도구로 거즈 카운트를 어렵지 않게 수행하고 있던 것. 간호사들에게 묻고 나서야 한과장은 '거즈 카운터'라는 것을 알았다. 한과장은 국내 병원에서는 어떻게 거즈 카운트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의료 현장을 다루는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국내 순회간호사 두 명이 바닥에 허리를 숙이는 불편한 자세로 앉아 직접 손으로 거즈를 세고 있던 것. 한과장은 거즈 카운터를 직접 만들어 병원에 들이기로 결심했다.

의료 도구를 하나 만드는 데에는 비용이 몇 천만 원 이상 든다.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 고민하던 한과장은 창업을 하면 여러 지원을 받아 거즈 카운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돼 창업을 시작했다.

(주)한진메디칼은 한과장의 아버지 한상진 대표가 세운 기업이다. 그는 (주)한진메디칼을 줄인 명칭(HJM)에 Factory를 더해 기업 이름을 '에이치제이엠에프'(HJMF)라고 지었다.

에이치제이엠에프는 거즈를 거치하는 거즈 카운터와 거즈 카운터를 받는 혈액받침통을 만들었다.
에이치제이엠에프는 거즈를 거치하는 거즈 카운터와 거즈 카운터를 받는 혈액받침통을 만들었다.

HJMF는 3D 프린팅으로 거즈 10개를 담는 거즈 카운터 GACO(GauzeCounter)를 만들었다. 이 거즈 카운터는 대, 중, 소 모든 크기의 거즈를 거치하고 고정할 수 있어 수술 도중에 발생하는 거즈 분실을 방지한다. 또 거즈를 깔끔하게 정리해 수술실 오염도 막는다.

거즈 카운트를 손으로 직접 하면 두세 번 이상 확인하는 데다, 카운트를 세는 도중 실수할 확률이 높아 수술이 지연된다. 거즈 카운터를 사용하면 한 번만으로 즉시 카운트가 가능하며, 카운터 하나만으로 모든 거즈를 셀 수 있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또 디자인과 사용 방법이 단순해 의료진은 거즈 카운터를 쉽게 쓸 수 있다.

한과장은 여러 병원에 자문을 구해 거즈 카운터 디자인을 수정했다. 너무 크다는 의견을 받아 크기를 줄이고(GACO2), 어느 병원이 거즈를 5개로 카운트한다고 말하자 5개만 관리할 수 있는 GACO3를 만들었다.

거즈 카운터는 1회용으로 일반 의료폐기물이라 분리수거 없이 쉽게 버릴 수 있으며, FDA가 승인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친환경적이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 거즈 카운터를 사용한 결과. 출처: 에이치제이엠에프
부산의 한 병원에서 거즈 카운터를 사용한 결과. 출처: 에이치제이엠에프

HJMF는 거즈 카운터를 그대로 받아 폐기할 수 있는 혈액받침통도 만들었다. 혈액이 묻은 거즈는 일반 의료폐기물로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혈액이 묻은 거즈는 혈액받침통에 담아 깔끔하게 버릴 수 있다.

한과장은 "창업을 하면서 의료진을 설득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아무리 불편해도 의료진은 기존 방식으로 거즈를 세는 게 익숙했기 때문. 거즈 카운터는 낯설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병원 수술실 30곳을 방문하면서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거즈 카운터를 열심히 쓰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풀었다. 오랜 설득 끝에 거즈 카운터를 쓴 병원은 "사용해보니 직접 세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는 후기를 남겼다.

에이치제이엠에프가 만들고 있는 거즈카운터스케일 도안. 출처: 에이치제이엠에프
에이치제이엠에프가 만들고 있는 거즈카운터스케일 도안. 출처: 에이치제이엠에프

HJMF는 거즈와 거즈 카운터로 환자의 출혈량을 정확히 재는 '거즈카운터스케일'(GACOscale)을 개발하고 있다. 수술에 참여한 간호사는 거즈에 묻은 피의 묽기로 출혈량을 추측하며, 이를 '추정 출혈량'(Estimated Blood Loss, EBL)이라고 부른다.

혈액받침통에 거즈를 거치한 거즈 카운터를 걸면 거즈카운터스케일은 영점 조절로 거즈와 거즈 카운터 무게를 미리 빼고 거즈에 묻은 혈액과 받침통에 떨어진 혈액 무게를 재 출혈량을 측정한다. 또 출혈량은 갤럭시탭 같은 태플릿PC에 기록돼 의료진은 이를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다.

거즈 카운터가 없어도 거즈카운터스케일을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한 거즈만 통에 담고 혈액량 무게를 재면 된다. 한과장은 "의료진은 수술 뒤 환자를 처방하거나 의료 분쟁이 발생할 때 거즈카운터스케일 기록을 증거자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JMF는 지난 9월부터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에서 거즈카운터스케일 사용적합성평가를 받고 있다. 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정한 경상대국립병원 감염병 특화 개방형 실험실에 입주를 신청할 계획이다.

한정현 대표는 "거즈카운터스케일을 완성하고 환자의 출혈량을 정확히 측정해 '추정 출혈량'이라는 단어를 없앨 수 있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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